네팔의 왕 마헨드라 왕에 대해서
오랜만에 네팔의 왕 4번째 마헨드라 왕에 대해서 글을 써보겠습니다
마헨드라는 1955년에 왕위에 오르지만 불안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네팔 국민들이 불안해 했지만 야망이 컷던 그는 서구 교육을 받지 않고 전통을 지키면서 변화에 둔한 네팔에 라나 가문으로 피폐해진 국가를 다시 일으킬 수호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때에 라나 가문의 힘은 꺾여가고 있었고 영국의 인도 철수로 지지를 받지 못했고 대중의 불만이 표출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마헨드라 입장에선 라나가문에 칼을 꼽고 권력을 되찾기 위해 국민의 편에 서서 법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볼수 있었습니다
1960년 12월 15일 마헨드라 왕은 내각을 해산시키고 헌법을 유린하며 직접 통치를 하였고 그때 당시 총리와 그의 측근들을 투옥하여 쿠테타가 성공하게 됩니다
이로써 마헨드라 왕은 자비로운 독재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네팔에 통치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5년동안 정당들의 활동을 인정했지만 정당제로는 네팔이 안정을 이룰수 없다고 생각하고 1960년 정당제로는 더이상의 공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정당제도를 금지하게 됩니다
이로서 판챠야트 통치제도 (지역별 행정기관을 혼자서 관리하는 제도)를 시행하게 되는데 국민들의 민주주의 운동이 이때부터 본격화 하기 시작합니다
마헨드라는 전통적인 왕권을 되찾으려 하였고 국가 발전을 위해 근대문명을 수용하는데 노력을 하여 이때에 내팔에 근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네팔의 근대화 시작은 마헨드라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 토지개혁 법안을 제정하여 토지 소유에도 상한선을 뒀으며 지금도 네팔에서 일정부분 악습이라고 할 수 있는 카스트제도를 철폐하는 법안을 마련하여 계급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도록 하는 등 이때에 많은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시대에 뒤쳐진 관례를 철폐한다는 명목하에 지금까지 권력을 악용했던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네팔 국민에게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네팔에서 일어나는 시위인 "번더"(닫다, 폐쇠한다) 라는 네팔의 독특한 시위 문화가 이때 본격적으로 발생됩니다
번더가 시작되면 시위가 진행되는 도시의 이동수단은 (버스, 자가용, 오토바이) 모두 운행할 수 없으며 시위 중 가계에서 장사를 하거나 관공서, 은행이 열려 있다면 그 건물을 때려 부수고 절도, 방화를 하는 등의 시위문화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는 치트완 국립공원에서 사냥을 하다 심장 마비 증세를 보였고 1977년 저녁식사 후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어 네팔은 또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