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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샤 왕좌의 역사 1편 프리트비 나라얀 샤 국왕해외여행 2017. 12. 22. 19:01반응형
한국에서 네팔 샤 왕좌에 대한 역사가 없어서 한번 글을 써보겠습니다
샤 왕좌는 250년 왕정이 이어지다 2008년 왕권이 무너지면서 공화국 등장했지만 오랜기간 마오이스트와 내전과 비리로 네팔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도 죽은 왕을 존경하고 다시 왕권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카트만두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샤 왕들의 동상과 흉상이 곳곳에 있습니다
(네팔인이 촬영한 마핸드라 국왕의 동상)
네팔 건국의 초대 왕 프리트비 나라얀 샤
샤 왕좌의 시작은 네팔 용병으로 잘 알려지 고루카 지역에서 시작이 됩니다
당시 고르카 마셀 지역에 지진복구 하러 가느라 왕실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차후에 네팔에 가면 방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대 왕 프리트비 나라얀 샤 국왕 1723년 출생 1768년 9월 25일 재위 네팔을 통일하고 최초의 샤 왕조를 만든 국왕입니다
고르카에서 태어난 그는 젋은 시절 그가 태어난 땅은 농사가 어려운 산속 깊은 곳에서 사는 가난한 왕이었고 당시 네팔은 여러 왕국이 있어 전쟁 중이었습니다
프리트비 나라얀은 그의 아버지를 초기 전쟁에서 카트만두의 말라족에게 잃게 되어 복수를 하기 위해 카트만두를 가려면 누와콧을 지나야기 때문에 누와콧부터 정복하고 결국 카트만두 계곡까지 오게 됩니다
그는 카트만두 산에 올라 내려다 보이는 넓은 땅을 보며 내 발아래에 보이는 땅을 모두 가지겠노라 선언을 하게 됩니다
카트만두의 중요성에 대해서
카트만두의 위치적 중요성 티베트와 인도 교역의 중심에 있고 비옥한 넓은 땅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듈리켈까지)과 산위의 분지 지형으로 군사적, 경재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어 이곳을 장악한다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리트비 나라얀은 누와콧을 점령 후 이곳까지 오는데 많은 군사를 잃어 카트만두 여러 왕국과 전면전을 치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카트만두 계곡 주변지역을 게릴라 전술로 하나씩 점령하며 카트만두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교역로를 완전히 끊어 버려 점차 샤의 통제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안에 카트만두를 공격과 후퇴 그리고 방어를 할 수 있는 거점이 필요 했는데 그 지역이 바로 키르티푸르 였습니다
프리트비 나라얀 샤는 12년 동안 총 4회에 걸쳐 키르티푸르를 포위 공격하여 승리하는 과정에 그가 총예하던 칼로 판데이 장군, 자신의 형제를 잃게 됩니다
이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키르티푸르 에서는 지금도 그때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칼로 판데이 장군은 키르티푸르 게이트 근처 산속에서 싸우다 군대가 패하자 산 밑으로 달아나다 적에게잡혀 참수를 당하게 되었고 샤의 형제들 또한 무자비 하게 죽게 됩니다.
프리트비 나라얀 샤는 복수를 위해 거짓으로 키르티푸르 국왕에게 화해와 모종의 협약을 맺기 위해 요구를 하였고 키르티푸르 국왕은 프리트비 나라얀이 접근하도록 길을 열어주기로 하였지만 거짓임을 알고 키르티푸르 왕국의 문을 닫아 유리한 위치에서 공성전을 벌이지만 결국 키르티푸르를 점령을 하게 됩니다
프리트비 나라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키르티푸르에 사는 모든 남자들을 학살하게 되는데 학살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옥했습니다
형벌은 키르티푸르 왕이 협약을 어긴 이유로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면 코를 자르는 불륜에 대한 처벌 네팔풍습을 약속을 깬 키르티푸르 국왕을 간통한 여자라 비유하여 키르티푸르 모든 남자들의 코와 입술을 잘라버립니다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염소를 재는 저울에 쌓인 잘린 코와 입술이 염소 한마리 무개를 넘겼다는 이야기가 내려올 정도입니다
프리트비 나라얀은 이로써 카트만두 주변 다른 왕국에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겨우 피신을 했던 키르티푸르 자야 프라카쉬 말라는 샤의 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아내와 함께 지금의 파탄으로 도망가버려 샤는 큰 전투 없이 대부분의 카트만두를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파탄의 국왕인 테지 나르쉬 말라 국왕과 프라카쉬말라는 프리트비 나라얀 군대와 전쟁으로 파탄이 정복당하자 박타푸르로 피난을 가게 된다
이로써 프리트비 나라얀은 1769년 9월 25일 카트만두를 수도로 천거하고 네팔 통일을 이룬 왕이 되는데 지금도 카트만두는 파탄, 박타푸르 사람들과 사이가 정말 좋지 않아 지역감정 싸움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후 프리트비 나라양은 오랜기간 카트만두를 통치 하지만 1775년 1월 11일 그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며 후계자 왕위 계승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때부터 왕실 주변에 왕위계승에 정실과 첩까지 왕위 후계자로 다투게 되어 정국이 혼란스러워 지고 왕자들의 역량은 모자랐으며 나이가 어려 왕위에 즉위를 해도 섭정이 대신 다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그의 아들 프라타프 싱 샤에게 물려주게 되지만 4까지 섭정이 다스리는 왕정시대를 이어나가고 5대 라젠드라 샤 왕정때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다음 이야기는 5대 라젠드라 샤 왕정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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